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드라마 <사랑해, 울지 마>는 남자 주인공이 거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여자들끼리 갈등하고 울고 거짓말하고 용서해 달라고 빌고 원망하고 있을 뿐입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악감정을 품고는 온갖 모진 말을 아무렇지도 않고 하면 며느리가 커다란 눈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아예 친정 엄마에게까지 입에 담기 힘든 말들을 퍼부었습니다. 도대체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울 정도로 막장스러운 캐릭터입니다.

그걸 보면서 '지금이 어느 땐데'라고 반응하면서도 또다시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을 떠올리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그 말에 동의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 드라마에서 한 번 더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각인시킨다는 뜻입니다. 지금껏 수없이 많은 드라마에서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알게 모르게 설파해 왔습니다. 위에 언급한 <사랑해, 울지 마> 외에 올해 방송한 것만 해도 <아내의 유혹> <미워도 다시 한 번> 같은 드라마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여자들은 이성이고 경험이고 지위고 관계 없이 오직 자기가 원하는 남자를 차지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거나, 시청자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비상식적인 이유를 들어 상대방을 괴롭힙니다. 신애리나 은혜정, 미수의 시어머니 등은 이토록 찌질할 수 없으면서도 '여자란.. 쯧쯧' 하고 혀를 차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정말 여자의 적이 여자인가요? 도대체 어쩌다 이런 말이 나왔을까요? 얼마 전 다큐멘터리를 보니 남자와 여자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데, 정말 여자는 태어나면서 다른 여자에 대한 질투를 본능적으로 갖게 된 건가요?

결혼도, 사회도 남자가 중심적인 가부장사회에서 여자는 스스로 힘을 갖고 자립하기가 무척 힘겹습니다. 그렇기에 큰소리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내고 살려면 아들, 남편에게 올인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성차별이 엄연히 존재하는 속에서 여자는 임금이나 승진 면에서 불리한 것이 사실이고, 그 가운데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연대'와 '화합'이라는 대안은 무시되기 쉽습니다.

이렇듯 여자들이 뭉치기 힘들어지니, 남자는 여자를 좀 더 통제하기 쉬워지고 '여자는 질투심이 강하고 속이 좁으니 화합하지 못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조용히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건 마치 '88만원 세대'에게 '너희가 공부 열심히 안 해서 대기업에 못 들어갔으면서 웬 열등감 폭발?'이라고 묻는 '1등주의자'들과도 같습니다.

무리를 짓고 뒷이야기를 하고 비이성적으로 타인을 괴롭히는 여자,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여자의 문제라고만 할 수 없습니다. 여자에게는 처음부터 편견의 굴레를 씌워놓고 극히 소수에게만 제대로 된 자리를 허락한 이 가부장제 사회도 원인 제공자입니다.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인지, 드라마에서는 오늘도 '이상한 여자들'이 끊임없이 나옵니다. 어려운 시어머니, 어려운 여자 상사나 선후배들, 저도 여기저기에서 듣고 경험했습니다. 이들을 드라마에서 그리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상한 여자들'의 '비상식적인 행동'이 점점 자극적으로 그려지면서 '여자의 적은 여자', '여자는 정말 어쩔 수 없어' 따위의 고정관념과 굴레가 지속적으로 덧씌워지는 것은 문제입니다.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여자들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히 사실이지만, 드라마는 '이상한 여자'가 하는 다양한 극단적인 행동뿐만 아니라, 그런 여성이 왜 나오는지 사회적인 배경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현재 드라마는 수백 년을 이어 온 '여자는 안 돼'라는 편견을 강화시키는 수단이지만, 통찰력을 갖춘다면 이런 편견을 개선할 수 있는 긍정적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드라마 시리즈는 한 주에 한 편씩 방송된다. 그런데 한국 드라마는 왜 한 주에 두 편씩 방송될까?

일본 배우 기무라 타쿠야가 자신이 진행하는 토크쇼에 출연한 한국 배우로부터 이런 사정을 전해 듣고  "대단하다!"고 감탄한 적이 있다. 한국의 배우와 스탭들이 한 주에 70분짜리 두 편씩, 총 140분 가량의 방송분을 촬영하느라 살인적인 스케줄에 허덕인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방송 중반부터 만듦새가 흐트러지고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얼마전엔 드라마 <꽃보다 남자> 배우들의 교통사고가 잇따르면서 드라마 제작 환경을 둘러싼 해묵은 논란이 다시금 불거지기도 했는데, 이런 문제적 상황에서도 '한 주에 두 편'이라는 공식이 깨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세기에 가까운 한국 드라마 역사에서 '한 주에 두편'이라는 공식은 언제, 왜 탄생한 것인지 궁금했다. 수소문 끝에 이연헌 전 충주MBC 사장과 통화할 수 있었다. 1969년 MBC 드라마 피디로 출발해<수사반장> <전원일기> 등을 연출한, 한국 드라마사의 산 증인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KBS와 TBC, MBC가 본격적인 시청률 경쟁을 벌이기 시작한 1960년대 중반, 드라마는 곧 '연속극'을 의미했다.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회당 30분씩 방송되는 '매일연속극', 혹은 '일일연속극'은 광고 접근성과 지속성이 높아 광고주들이 선호하는 장르였단다. ENG카메라가 없던 시절이니 야외촬영은 불가능했고, 100% 세트에서 진행되는 '홈드라마'가 주를 이루었다. 덕분에 한 방송사당 많으면 하루 4편씩, 방송 3사를 합하면 매일 10~12개의 일일드라마가 방송되기에 이르렀다."<너는 내 운명>같은 드라마가 7시30분에 한 편, 8시30분에 한 편, 10시에 한 편 방송된다고 생각하면 된다"니, 과연 일일연속극 전성시대였던 셈.

일일 연속극 외에 한 주에 한 편씩 방송하는 '주간 연속극'도 있었는데, 1971년부터 방송된 <수사반장>이나 1980년 첫 방송한 <전원일기>가 대표적인 주간 연속극 되겠다. (청소년 드라마, 계몽(또는 반공)드라마, 농촌 드라마 등 소재와 시청층이 다양한 연속극들이 한 주에 한 편씩, 요즘 말로 '띠편성'됐다고 한다.)

단막극이라는 장르가 생긴 건 1980년 KBS <TV문학관>이 문을 연 뒤 MBC가 1983년 <MBC베스트셀러극장>을 방송하면서 부터다. "드라마와 문학을 접목시켜 좀더 수준 높은 드라마를 만들어보자는 취지, 야외 촬영을 늘려 드라마 형식에 있어서도 새바람을 일으켜보고자 하는 시도"였다. 초창기 단막극의 야외 촬영분은 영화 필름으로 찍은 뒤 후시 녹음했으므로, 일주일에 한 편 방송하기도 버거웠단다.

1987년 MBC가 8부작 드라마 <불새>를 내놓으면서, 드디어 '미니시리즈' 시대가 열렸다. 단막극보다는 길고, 연속극보다는 짧은 이 독특한 드라마를 어떻게 편성해야 할 지 고민이 많았다는데, "한 주에 한 편은 좀 아쉽고, 세 편 이상되면 일일 연속극과 차별화되지 않으니 두 편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드라마의 '연속성'도 살리면서 '실험성'도 도드라지게 하겠다는 편성 전략이었던 듯 싶다. 촬영·편집 장비가 발달하는 등 제작 환경이 좋아지면서 8부작이 12부작으로, 다시 16부작으로 늘어나 한동안 '미니시리즈=16부작'이라는 등식이 통용됐고, 방송사들은 다양한 소재와 참신한 시도에 역점을 둔 이 새로운 드라마를 시청층이 비교적 젊은 주중 밤 10시에 배치했다.

요즘은 평일 밤 10시에 방송되는 드라마 시리즈를 '미니시리즈'라고 부르지 않는다. 대부분 20부작이 넘는데다, <에덴의 동쪽>(사진)처럼 '창사특집' '스페셜 드라마' 등의 부제로 50부작, 70부작 드라마도 이 시간대에 방송되기 때문이다. 소재나 흐름 등 내용면에서도 다른 방송시간대 드라마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에, '미니시리즈'는 (형식이나 내용, 모든 면에서) 사라졌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미니시리즈는 '한 주 두 편 방송'이라는, 불멸의 편성 법칙을 남겼다. KBS와 MBC가 '제작비 조달의 어려움'을 이유로 잇따라 단막극을 폐지하고 주간 연속극도 찾아보기 힘든 지금, 지상파 3사는 일일 연속극을 제외한 모든 드라마를 한 주에 두 편씩 방송하고 있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한국 드라마는 한 주에 두 편씩 방송된다! 20년 전 미니시리즈를 첫 편성했던 MBC 담당자는 자신의 전략이 이처럼 고정불변, 무소불위의 법칙이 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시청자들이 한 주에 두 편씩 보는 시청 방식에 익숙하고, 광고주들 역시 이러한 상황에 익숙할테니 드라마 편성 방식이 쉽게 달라지진 않을 것 같다.하지만 분량도, 소재도, 주시청층도 다른 드라마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편성된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이 편성 법칙에 어울리지 않는 드라마들은 기획조차 불가능하다는 얘기 아닌가, 말이다. 게다가 한 주에 140분짜리를 만드느라 교통사고와 부상이 속출한다는데도 모든 드라마에 똑같은 편성 규칙이 적용돼야 한다니… 천편일률 싫어하는 거, 역시 나만 그런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