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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는 결코 웰메이드가 아닙니다. 한 회 안에서도 앞뒤가 안 맞는 상황이 남발되곤 하니까요. 승마에 사격에 검도도 하는 우리 아가씨가 딱 자전거만 못 탄다는 건 사실 말이 안 되죠. 이태윤 변호사는 분명히 자기가 자전거 타고 데이트하자고 말해 놓고는 강혜나가 자전거를 서툴게나마 타는 걸 보면서 '생각보단 잘 타네' 하고 말합니다. 이런 식으로 모순을 지적하자면 한둘이 아니죠.

그런데 지난주 제가 '유레카'라고 외칠 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환갑을 넘기신 저희 엄마와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제 여동생에게 이 드라마가 어떻느냐고 했더니 '너무 재미있다. 유쾌하다. 가슴 설렌다.' 같은 열광적인 반응이 돌아온 것입니다.

세대를 뛰어넘어 <아가씨를 부탁해>가 호응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저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모든 드라마가 웰메이드가 될 필요는 없으며, 드라마의 기획의도가 시청자에게 어필된다면 그 또한 뭔가 가치가 있는 게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든 거죠.

이 드라마, 슬슬 입질이 온다

마침 지난주, 7-8회부터는 <아가씨를 부탁해>가 조금 재미있어졌습니다. 집사 서동찬이 본격적으로 아가씨 강혜나를 좋아하기 시작했고, 아가씨 강혜나는 본격적으로 변호사 이태윤과 사귀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여의주도 본격적으로 서동찬을 좋아하기 시작했고요. 로맨틱 코미디의 기본인 '러브 라인'이 제대로 형성되어 사건이 흘러가게 된 거죠.

'이게 말이 돼?' 하는 꼰대스러운 눈을 감고 드라마를 보면서 저는 2006년 <경성 스캔들> 이후 처음으로 다음 편을 기다리는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경성 스캔들> 초반부의 전개는 지금 생각해도 대단히 재치 있었습니다. 9회부터는 산으로 가고 말았지만.) 9회를 기다리면서 마음도 설레고, 기대도 되더군요. 그리고 바쁜 와중에도 일을 접고 텔레비전을 찾아서 보았습니다.

윤상현의, 윤상현에 의한, 윤상현을 위한 드라마

그 설렘의 한가운데에는 전직 제비이자 현직 집사인 서동찬 역의 윤상현 씨가 있었습니다. 저는 6회까지만 해도 윤상현 씨를 보면서 윤은혜 씨와 나이 차가 너무 많이 나 보여서 아쉽다고 느꼈습니다. 껄렁하면서도 마음이 따뜻한 남자 주인공으로 강지환 씨가 어떨까 하면서 대입해 보곤 했죠. 하이톤의 목소리를 낼 때가 많은데, 강지환 씨도 연기할 때 하이톤을 많이 사용하니까요. (어쩌면 <경성 스캔들>의 영향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7회 자전거 장면에서 강지환 씨를 완전히 떨쳤습니다. 아가씨를 좋아하지만 이제 떠나야겠다고 생각하며 아스라히 강혜나를 바라보는데, 그 연기는 다른 사람으로 결코 대체될 수 있는 게 아니었거든요. 9회에서도 강혜나에게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들킨 뒤의 복잡한 심경을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과연 쪽대본에서 나올 수 있는 퀄리티의 연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본은 그리 뛰어나지 않은데(대사로 미루어볼 때) 그걸 소화해서 완전히 서동찬 자신이 되어 있는 윤상현 씨의 집중력은 참 놀라웠습니다.

<아가씨를 부탁해>가 시작할 때에는 윤은혜 씨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어느덧 서동찬이 극의 독보적인 주인공처럼 느껴집니다. 혼자서 극의 모든 감정적 흐름, 사건의 흐름을 이끌어가고 컨트롤하는 듯 보이더군요. 저는 <내조의 여왕>을 못 보았는데, 윤상현 씨 연기 때문에 그걸 보고 싶어질 만큼 인상적입니다. 좋은 연기자가 쪽대본이라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이렇게 좋은 연기를 보여주니 참 고마울 따름입니다.

나도 집사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이 서동찬 역의 윤상현 씨라면, 이 드라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점은 '여자 주인공에게 아무도 반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지금껏 대부분의 드라마에서는 여자 주인공에게 말을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일단 강혜나의 '신분' 때문인지 이태윤 변호사도 사귀는 사이임에도 존댓말을 씁니다. 아, 참으로 흐뭇한 광경입니다. 아직도 우리나라 드라마나 영화, 심지어 광고에서는 남편은 아내에게 반말을, 아내는 남편에게 존댓말을 쓰니까요. (싸울 때도 아내들은 '우리, 이혼해요!'라고 존댓말을 쓰죠) 

<아가씨를 부탁해>의 '집사 코드'는 여성을 상당히 자극하는 면이 있습니다. 말은 집사지만 사실상 하인이나 다름없는데, 그는 내 말이라면 뭐든지 들어줍니다. 내가 아무리 싸가지 없이 굴어도 내게 깍듯하게 대하며, 항상 옆에서 나를 보호해주기 때문에 내가 어디에서 뭘 해도 안심이 됩니다. 남성이 순종적인 여성에 대한 판타지가 있듯이, 여성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여성의 이상형은 '평생 나만 사랑하고 바라봐줄 남자'입니다. (뭐, 워낙 이래저래 각박해진 요즘은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평생 나만 사랑해줄 남자를 찾지 않는 건 아니지요) 그런데 서동찬 '집사'는 직업부터 평생 곁에서 바라봐줄 남자인 데다 키 크고 잘생겼고 한 발 더 나아가 여자를 사랑해주기까지 합니다.

그렇게 강단 있던 아가씨는 어딜 가고, 서동찬 집사가 아니면 회의 하나 제대로 참석 못하는 무능한 여자만 남았느냐, 이런 비판은 잠시 접어두겠습니다. 그런 드라마가 한둘이 아니어서 말이죠. 휴우! 팍팍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나도 집사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반쯤은 성공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게 말이 돼?' 하다가 '나도 집사가 있었으면!'까지 오게 만든 윤상현 씨의 연기는 참 대단합니다.)

이제 과거는 밝혀졌고 갈등도 점점 고조되겠군요. 절반이 진행되도록 여전히 강혜나와 이태윤 캐릭터가 약하다는 점은 마음에 걸리지만,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서동찬 캐릭터의 매력에 집중해서 보면 드라마가 꽤 재미있습니다. 서동찬의 카운터파트인 이태윤 캐릭터가 너무 약해서 긴장감이 떨어지는 부분이 어서 보완되었으면 합니다만, 팍팍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설레고 유쾌한 로맨스에 빠지게 해 주는 이 드라마, 저는 한 표 던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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